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의 눈물 (문단 편집) === 화려한 캐스팅 === [[파일:external/sports.donga.com/37646240.8.jpg]] 이 드라마의 중심 인물인 태종 [[태종(조선)|이방원]] 역의 [[유동근]]과 [[원경왕후]] 역의 [[최명길(배우)|최명길]]. 출연진도 상당히 화려했다. 당시를 제대로 재현한 점과 탄탄한 스토리에 힘입어 출연진이 하나같이 소름끼치고 무서운 후덜덜한 연기를 보여준다. 모든 것을 얻었다가 모든 것을 잃어가며 고뇌하는 태조 [[이성계]] 역에는 작고한 원로 배우 [[김무생]]이,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일 정도로 무서운 철혈군주인 주인공 태종 [[이방원]] 역에는 [[유동근]]이 열연했다. 김무생과 유동근은 이 이후로도 여러 작품에서 재회한다. 어린이 드라마 《[[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에서 유동근은 초등교사, 김무생은 마을 이장을 맡았다. [[어깨동무(영화)|어깨동무]]라는 영화에서는 유동근이 다시 한번 김무생의 아들로 등장해서, 아버지에게 파리채로 얻어맞는 굴욕을 보여줬다. 김무생이 세상을 떠난 후 빈소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가 유동근이었던 정도로, 이 드라마로 인하여 서로 잘 따르고 아껴주는 선후배 사이가 되었다. 남편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장부, 중전 [[원경왕후]] 민씨를 열연한 [[최명길(배우)|최명길]]은 후의 KBS 드라마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서 [[명성황후]]를 맡음으로써(이번에도 민씨[* 둘 다 [[여흥 민씨]]다.]), [[흥선대원군]]을 연기한 유동근과 악연을 이어나갔다.[* 심지어 정안대군이 [[명성황후|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얘길 민씨 부인 앞에서 하는 장면이 본작에 나온다.] 거기다 약 10년 뒤에 제작된 《[[대왕 세종]]》에서도 같은 인물인 원경왕후로 나왔다. 원경왕후로는 최명길을 따라갈 연기자가 없을 듯하다. 최명길 본인도 《대왕 세종》에서 원경왕후로 캐스팅된 이후 "[[원경왕후]]와 무슨 연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며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최명길은 《용의 눈물》 촬영 중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극이 연장되면서 출산을 위해 끝까지 촬영을 함께 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후반부의 주요 사건인 [[양녕대군]] 폐세자와 [[심온]]의 죽음까지도 보고 죽은 [[원경왕후]]를 중도하차시킬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최명길이 출연하는 장면의 30회분을 미리 찍어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최명길의 연기 투혼도 대단하지만, 쪽대본으로 촬영하는 요즘 드라마 환경에서 돌아보면 여기에 맞춰 따로 대본을 준비한 이환경 작가도 대단하다. 그 후 최명길이 출산하자, 상궁 역으로 출연한 배우들이 "중전마마의 아기씨 순산을 경하드립니다. 상궁 일동"이라고 적힌 꽃바구니를 보냈다고 한다.[* 실제로 후반 30화에서 [[원경왕후]]가 나오는 장면만 모아 보면 야외 신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냉정한 천재 재상 [[정도전]] 역에는 [[김흥기]]가 맡았으며 광기 넘치는 [[양녕대군]]을 훌륭하게 연기한 [[이민우(배우)|이민우]][* 천민들과 어울려 상주놀이를 하는 모습, 어머니 [[원경왕후]]가 아들을 위해 열어 놓은 굿판에 뛰어들어 무당의 칼을 빼앗아 들고 자신이 무당춤을 추는 모습 등 광기 어린 양녕의 기행을 신들린 듯 연기하여 방영 당시에도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는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김흥기는 [[개국(드라마)|개국]]에서도 [[정도전]] 역할을 맡았었는데, 단순히 정도전 역할을 많이 맡은 정도가 아니라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전문가 수준으로 깊게 이해하고 있어서 후배 배우들로 하여금 역사 공부를 충실히 하고 역할에 임하는 모습의 모범이 되는 배우였다. 실제로 그는 1997년에 [[국민대학교]] 에서 정도전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한 특강까지 진행하였고 [[경희대학교]]에서도 '정도전 나도 할 말 있다' 라는 특강을 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52800329119013&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5-28&officeId=00032&pageNo=19&printNo=16116&publishType=00010|당시 신문기사]], [[https://www.kookmin.ac.kr/site/ecampus/perfor/thu_lecture/63?pn=40|당시 특강 내용]] 또한 [[충녕대군]], 즉 [[세종대왕]]을 연기한 [[안재모]], [[무안대군|이방번]]을 연기한 [[정태우]], 나인 노씨[* 궁궐에서 밥상 나르다가 태종 [[이방원]]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게 되는데 이에 분노한 [[원경왕후]]에 의해 죽을 뻔하고, 태종의 흥미도 잃게 된 채 조용히 극중에서 사라진다.]를 연기한 [[하지원]], [[이숙번]]의 부인 역을 맡은 [[송윤아]][* 원래 [[경순공주]] 역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당시 영화 촬영 중이라 삭발이 불가능해서 거절했다.], 세자 [[이방석]]의 세자빈으로 들어왔으나 내관이랑 간통하다가 목을 매고 자살한 폐세자빈 유씨 역의 [[이재은(1980)|이재은]] 등 유명 배우들의 신인 시절 연기도 지금보면 색다른 볼거리이며, 그 연기력도 매우 볼만하다. 이외에도 [[신덕왕후|신덕왕후 강씨]] 역에는 [[김영란(배우)|김영란]], [[정종(조선)|정종]] 역에는 [[태민영]], [[익안대군|익안대군 이방의]] 역에는 [[최동준]], [[회안대군|회안대군 이방간]] 역의 [[김주영(1952)|김주영]], [[남은]] 역에는 사망전대 [[이영후]], 태종의 장인이자 [[원경왕후]]의 아버지로 부원군(국왕의 장인)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결국 아들들의 몰락을 병석에서 지켜보는 [[민제]] 역에는 [[송재호]][* 극중에서는 학문과 인품을 겸비한 당대의 대학자로 등장했다. 중전이 된 딸과 권세를 차지하는 장/차남([[민무구]]-[[민무질]] 형제)이 사위 [[이방원]]과 함께 두 차례의 [[왕자의 난]]에 가담하는 등 강한 권력의지를 드러낼 때 민제가 이를 강하게 만류, 경고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민제 자신이 권력에 초연한 학자 스타일이기도 했지만 외척정치에 대한 방원의 경계감을 눈치 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제의 장남 [[민무구]] 역에 신동훈[* 《[[태조 왕건]]》에서 [[배현경]] 역을 맡은 배우.], 차남 [[민무질]]에는 나한일, 태종의 심복인 [[조영무]] 역에는 [[장항선]][* 극중에서 [[이성계]]의 [[여진족]] 의형제 [[이지란]]의 부하 장수 출신으로 등장한다.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비롯해 초반부에는 고지식하고 용맹할 뿐인 무사였는데, 방원이 즉위하여 중신으로 정계에 본격 등장하면서 나름 학문과 유머를 구사하는 개그 캐릭터로 변모한다. 조영무가 죽은 직후, 그의 상갓집에 조문 온 중신들 중 [[황희(조선)|황희]]가 "우리에게 많은 웃음을 주신 분"이라고 인증까지 했을 정도이다.][* [[제2차 왕자의 난]] 직후 [[이방원]]이 사병 폐지의 일환으로 측근들을 귀양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그래도 즉위 직전에 대부분 복귀시켜 중신에 임명함), 조영무가 귀양 생활하면서 뒤늦게 공부에 심취하는 모습이 나온다.], [[하륜]] 역에 [[임혁]], [[이숙번]] 역에 [[선동혁]], 양녕의 부인 김씨 역엔 [[안연홍]], [[원경왕후]] 옆을 지키는 중궁전 김 상궁 역에 [[김을동]][* 이 사람은 이후 KBS 드라마 《[[장희빈(KBS)|장희빈]]》에서도 희빈 장씨의 처소 권 상궁 역을 맡았었다.], 태종의 후궁들 중 [[효빈 김씨]] 역의 [[김혜리(배우)|김혜리]], 선빈 안씨 역의 이보희 등 알려진 배우들도 많이 나왔다. 이 밖에도 양녕의 궐 밖 친구와 조사의의 난 당시 여진 추장 중엔 [[구마적(야인시대)|구마적]] [[이원종(1966)|이원종]][* 거지패 두령으로도 출연한다. 1인 2역.]도 있고 주인 [[정몽주]]를 따라 사지로 가는 줄 알면서도 충직하게 말을 몰다 함께 변을 당하는 하인 역에 [[이상인]] 등, 이 당시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선 많이 알려진 배우들도 간간이 찾아볼 수 있다. 사족으로, [[유동근]]이 맡았던 태종 역은 [[이덕화]]가 한때 거론되기도 했지만 본인이 거절했었다고 한다.[* 이 같은 미안함 때문에 유동근은 이덕화, [[임동진]] 등 선배 탤런트들과 함께 2005년 7월 8일 열린 김재형 PD 고희연을 마련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